조난자들의 오두막
작살 | 297mm * 420mm |디지털 페인팅에 AR
* <조난자들의 오두막>은 AR 작품입니다. 기기를 이용해서 관람해주세요.
어둠에 밀려 오두막을 찾은 이는 한 명이 아니었다. 개중에는 방금 막 도착한 자들도 있었다.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한숨을 돌리니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순식간에 찾아왔다. 어디로 가야하지? 얼마나 더 가야하지? 애초에 내가 갈 수 있는 목적지라는 게 있나?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. 길이 보이지 않아요. 내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. 길을 잃은 조난자들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음습했다.
그때 한쪽 편에서 장비를 갈무리하던 덩치 큰 자가 말했다.
“그럼에도 해는 다시 뜨니까요"
불길처럼 번지는 불안함을 물리치는 하나의 확실한 믿음이었다. 언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. 이 거대한 재난 속에서 생존은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.
그래 해가 뜨면 다시 산을 오르자. 그때까지 준비를 하자.
사방에서 총성이 들리는 가운데 조난자들의 주위에는 기묘한 평안함이 감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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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마다의 고난을 겪고 도착한 오두막에서 조난자들은 일시적인 재난속의 유토피아를 경험한다. 재난 유토피아라는 말은 역설적이다. 재난은 그 자체로는 끔찍한 일이지만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유대를 이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.
홀로 감수했던 고통들을 실은 모두가 똑같이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유할 때 사람들은 공동체적 유대감을 느낀다. 여성들의 페미니즘적 움직임은 이런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서로 나누면서 시작된다. 집단이 된 여성들은 세상에 목소리 낼 힘을 얻으면서 성적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.
<조난자들의 오두막>은 거대한 재난상황 속 개인에게 여성해방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‘오두막’을 찾을 것을 제안한다. 생존을 위한 재정비와 휴식, 같은 목적의식을 가진 서로에게 느끼는 소속감은 곳곳에 도사리는 재난의 조류를 되돌려 놓을 수 있는 힘을 준다. 현재에 집중하게 만들어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해방시켜준다.